높은 자리일수록 더하다. 사람은 많아도 정작 믿을 만한 사람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혼자 일할 수는 없다. 믿고 맡길 직원이 필요하다. 그런데 누구를 믿을 수 있을까?
비즈니스 관계에서는 누구도 완전히 믿지 말자. 설령 지금까지 상대가 보여준 것들이 아무리 믿을만해도 그렇다. ‘러셀의 칠면조’처럼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러셀의 칠면조란 영국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의 귀납법 비판 비유에서 나온 말이다.
어느 농장에 칠면조가 있었다.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주인은 맛있는 먹이를 주었다.
칠면조는 내일도 모레도 아침이 되면 당연히 같은 일이 일어날 거라 생각했다.
지금까지 늘 그래왔으니 말이다.
칠면조에게 주인은 너무도 고맙고 믿을 만한 사람이었다.
자신이 원하는 결과(맛있는 먹이)를 꾸준히 제공해 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갑자기 모든 것이 변했다.
추수감사절이 가까워지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그렇게 친절했던 주인의 손이 먹이 대신 자신의 목을 우악스럽게 잡아버렸다.
칠면조는 놀랄 겨를도 없이 누군가의 요리로 밥상에 올려지는 신세가 되었다.
경험에서 만들어진 신뢰는 허상(虛像)에 가깝다. 러셀의 칠면조처럼 자신과 조직을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 있다.
그렇다고 속인 상대 탓만 하지 말자. 인간은 본디 타인을 속이고, 신도 속이고, 심지어 자신도 속일 수 있는 존재라고 하지 않은가. 경계하고 의심하지 않은 사람의 책임도 결코 가볍지 않다.
반대로 직원들을 완전히 믿지 않는 것도 리더가 택할 방법은 아니다. 그들의 자율성과 자기효능감을 떨어뜨려 조직 성과 달성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 믿어야 할까?
직원 유형별로 다르다. 직원 유형은 다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 기대한 결과를 보여주는 사람
- 행동하지만 결과가 없는 사람
- 말만 하는 사람
가장 믿을 수 있는 직원은 결과를 보여주는 사람이다. 흔히 말하는 인재이다. 결과의 질과 계속성에 따라 최대 80% 정도로 신뢰하자. 이 정도면 충분하다. 참고로 자신의 리더십에도 100% 믿음은 주지 말자.
이유가 뭘까? 자신의 리더십을 의심해야 부족함을 느끼고, 부족함을 느껴야 배우고, 배워야 성장하기 때문이다. 끝없는 과정이다. 성장이 멈출 때가 리더의 자리에서 내려올 때이다.
다음으로 믿을 수 있는 직원은 행동은 하지만 결과가 없거나 기대에 못 미치는 사람이다. 보여주는 노력에 따라 믿을 수 있는 최대 수치는 50%이다.
상대가 억울하게 느껴도 할 수 없다. 열심히 노력해도 성과를 내지 못했다면 이유는 단 하나다. 역량 부족이다. 역량이 부족한 사람을 온전히 믿을 순 없다.
마지막으로 말만 하는 직원은 어떨까? 말이 행동으로 전환될 때까지는 신뢰 평가는 유보하자. 말은 신뢰 평가의 대상이 아니다. 신뢰 크기는 0%이다.
사실 이 사실을 모르는 리더는 없다. 그런데 왜 말에 자꾸 현혹되는 것일까?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심리적 편향(bias) 때문이다. 특히 어렵거나 힘들 때 이런 편향의 힘은 더욱 강력해진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이 보이스피싱에 더 잘 속는 것처럼 말이다.
편향에서 빠져나오려면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구체적 행동 계획을 확인해야 한다.
- “네, 그렇군요. 언제 시작할 건가요? 그 일이 계획대로 진행되는지는 제가 어떻게 알 수 있나요?”
- “어떤 일들을 추진할 것인지 일정별로 구체적으로 말해주세요”
이런 질문으로 말만 앞세우는 직원의 행동을 압박할 수 있다. 직원이 스트레스 받는다고? 맞다. 그런 용도이다. 스트레스를 줄여주기보다는 신뢰의 크기를 높일 기회라는 것을 강조해야 한다.
조직을 버스로 생각하고, 기회를 살리지 못하는 직원은 버스에서 내리게 해야 한다. 믿지 못하는 사람을 버스에 계속 태울 순 없다. 언제 운전수 뒤통수를 때릴 지 모른다. 버스가 제대로 달릴 수 없다. 다른 승객들이 위험해진다.